농부가는 친환경으로 재배한 농작물로 4대가 건강하게 살고있습니다

저희 할머님 께서는 아흔이 넘어서도 동네 마실을 다니시고 건강하시지요

아버님은 한갑이넘어서도 과수원일을 하시고 ..

농부가 가족입니다

3형제 중

첫째는 열펌 전문 미용실경영하고

둘째는 엘지 건설에서 근무하며

셋째는 삼성그룹퇴사후 농부가 농업법인 대표로..



한지붕 4대가 함께하는 보은읍 김형근씨 가족

한지붕 아래 대가족이 함께 산다. 60~70년대 같으면 얘깃거리도 될 수 없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사이지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은군 보은읍 봉평리에서 벼농사와 과수농사를 병행하는 김형근(60)·김옥화(59)씨 가족은 한지붕 아래 4대가 살고 있다.

김씨 가족은 모친 김동순(90) 씨를 모시며 큰아들 부부인 김길환(36)·최임순 씨, 그리고 손자 성준(12)·성현(9) 군. 이렇게 4대가 대가족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설 명절에 화목한 가정을 취재한다고 하자, 극구 사양했다. 이유는 신문에 나올 정도로 대단한 가족이 아니라는 것.

예전에는 가족끼리 함께 모여사는게 당연한 풍습이었지만, 사회와 가족의 생활환경이 급속히 변하면서 부모형제가 한 지붕아래 어우러져 사는 건 드문 일이 돼버렸다.

자식은 결혼하면 분가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자식의 보살핌이 필요한 노부모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식어갔다.

독거노인들은 급속한 사회변화만치 늘어만 갔고, 각박해진 세태가 가족간의 삶과 생활조차 메마르게 만들어 버렸다.

김씨는 여형제만 넷이나 있는 외아들이라 부모 봉양은 의당 그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시집온 후 시부모를 36여년동안 모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아내 김옥화 씨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내 김옥화씨는 23세의 어린 나이에 그것도 외아들인 형근씨에게 시집왔다. 남편 위로 누이 하나와 아래로 줄줄이 시누이들을 친동생처럼 키우다시피 해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더 고약하다는 시누이 시집살이도 겪지 않았고 고부간의 갈등없는 가정을 꾸려갔다.

지붕이 새어 비만 오면 신혼 방에 양동이를 갖다놓고 빗물을 받을 정도로 반듯한 집 한 채 없는 생활이었지만, 믿음직한 가장 김형근씨를 중심으로 가족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됐고 그것이 곧 화목이었다.

땅 한평 없이 건설현장에서 벽돌쌓는 일로 돈을 벌었던 형근씨는 가족이 살기가 어렵자, 해외건설현장인 요르단과 사우디로 원정 노무자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형근씨가 사막에서 땀 흘려 번 돈은 차곡차곡 쌓였고, 그 돈은 나중에 논·밭으로 돌아와 살림 밑천이 되었다.

지난 1980년 보은 대홍수 때 사과 과수원을 망쳐 모두 캐내는 불행도 겪었지만 성실히 일한 이들 부부에게 하늘은 비가 새지 않는 튼튼한 집과 논 1만9천800㎡, 사과 과수원 1천155㎡와 땅 3만1천350㎡를 선사했다.

형근씨는 현재 '행복이 가득한 길정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4대가 한집에 살면서 10여년 동안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며 3년째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길정농원의 사과밭에는 생태계가 살아있는 모습을 갖추게 되어 되었다.

사과 한 상자 판 것까지 가계부에 기록할 정도로 계획적인 살림을 하는 김옥화씨에게 가장 큰 선물은 슬하의 아들 3형제다.

큰아들 길환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미용기술을 배웠고, 자신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준 최임순씨를 만나 결혼, 현재 보은읍 삼산리에서 '휠 헤어아트'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다.

"큰아들한테 나가서 살라고 해도 안나가네요."

형근씨는 정작 노모를 모시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큰아들 길환씨는 결혼과 함께 분가를 권했다. 하지만 아들 내외가 극구 함께 살기를 청해 덕분에 아기 울음소리, 웃음소리가 담 밖까지 들리는 사람 사는 것 같은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있다.

며느리 최임순씨는 "살림도 다하고 애들까지 봐주시는 어머니께 잘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늘 죄스럽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형근씨에게는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어머니 김동순씨의 건강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 딸 손자, 증손자까지 모두 모이면 70명을 훌쩍 넘기는 대식구인데도 다들 떨어져서 사니까 큰 일이 있으면 한 번 모일까 1년 열두달이 있어도 얼마나 보냐구. 서로들 바쁘니까 얼굴 못보고 지나가는 해도 많을 거야."라며 "떨어져 살면 손주가 보고 싶다고 맘대로 볼 수 있겠어 어디?"라며 증손주 보는 즐거움이 함께 살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인 듯 싶었다.

'정직한 사람이 되자', '책임지는 사람이 되자',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는 김형근씨의 삶이 녹아있는 가훈이다.

자식과 손자들에게 항상 어른을 극진히 공경하고, 어른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가훈이나 마찬가지다.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을 자식이 돌보는 건 당연한 도리입니다. 궂은일 맡아준 아내 덕분에 4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4대가 함께 하는 김형근씨의 생활을 보면서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