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한켠에 목공예 작업실을 만들고 틈틈히 생활에 필요한 작품들을 만든다. 렌즈달린 카메라 가방매고 일하는 젊은 농부로, 수준 높은 사진기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청일농원의 홈지기 윤희아빠 정호영군은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자신의 가족이 살고 농장을 이루는 모든것(벌레,꽃,작물…)들이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카메라 앵글에 담아 세상에 선을 보이고 있다.
아주 많은 도시민들이 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꾸는 꿈 -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있는 농장 - 을 향해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가며 꿈을 현실로 이루어 가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이야기로 소통하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환경친화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세운 뜻을 아들이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농업적인 삶의 양식, 그로부터 잉태된 전통과 문화의 총량으로 볼 때 우리농업이 이렇게 망가지고 피폐해진 것은 최근세기의 일이다. 구한말의 조선 지배계급의 오류와 일제침탈기의 수탈농업, 해방이후 50여년간 벌어진 농업희생정책의 결과로 인한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없이 많은 마을을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발달했고, 사람들이 오고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주 풍부한 사회였다. 할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새근새근 잠들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옛날이야기에 꿈인지 생시인지 빠져들곤 했다. 고비고비마다 견디고 이겨낸 크고 작은 무용담은 여럿의 이야기로 모아져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었다. 동네마다 구비마다 골짜기마다 냇가마다 이야기 아닌 것이 없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출현했을때, 나는 우리농업의 복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IT의 기반이 전국의 농산촌에 깔리면서 뿔뿔히 흩어지고, 포기하고 의기소침했던 우리농업의 살아갈 길이 열린것이라고 보았다. 그 시대 벌어진 일, 농촌을 떠난 사람들,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인해 그 관계가 복원될 경로가 열린 것이다.
청일관관농원처럼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역할로 이어받고 협력하고 생각을 보태고 시대의 흐름을 접목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에 일로서 감당하려하면 쉽지 않은 일일테지만 농장전체를 풀어가는데 필요한 '역할'로 자리매김하면 그 농장 고유한 가치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농사는, 농장은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농사는, 농업은 수많은 이야기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농사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같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농업은 우리가 지난 세월을 살아낸 전통과 문화속에서 ‘낯설지 않음'을 간직한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생성해낸다.
도시가 농촌을 그리워하고 농촌은 도시를 마음에 품는데 그 둘이 이어지는 연애 ‘스토리(Story)'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우고 아들이 잇는 청일관광농원의 모습에 흐뭇하고 그들이 꿈꾸고 만들어 낼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되고 또 기대되는 바다.
나는 이런 흐름이 우리농업의 현재를 풀어가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농업의 가치가 그간 우리사회를 짓눌러 왔던 ‘먹고사니즘', '허겁지겁 살아가기' 방식에서 벗어나 대지와 함께하는 조화로운 삶의 기조로 방향을 선회하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위대함이 갖는 그 포용성이 다양함으로 우리모두를 유쾌하게 살게 해줄것이기 때문이다.
정호영의 사람대하기 사물 마주하기
정호영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에서 자라나서 그런가 감성이 아주 풍부하다. 작물을 비롯하여 농장내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배제', '죽임', '경쟁'… 같은 것보다는 ‘상생', ‘협력','자립'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 |